간 행 사 전문

<본 세존학술연구원의 해외 우수학술서 번역 불사는 박찬호 거사의 시주(施主) 원력으로 이루어졌음을 밝힌다.>

1. 한국불교의 원류, 원효와 의상

중국을 거쳐 한국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는 4세기 후반이다. 중국은 기원 전후에 인도의 불교를 접할 수 있었는데, 이는 붓다 입멸 후 거의 500년이 지난 시점이다. 거의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지금의 정보 전달을 염두에 둔다면,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에 전래되기까지의 900여 년이란 시간은, ‘사상의 변천’이 난해해질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한, 짧지 않은 기간이다. 게다가 현재의 우리는 한국에 정착한 후 1,600여 년이나 지난 불교를 대하고 있다. 4세기 후반(372년) 고구려로 수입된 불교는 신라로 전해져, 원효(617~686)와 의상(625~702)이라는 두 걸출한 수행자를 통해 화려하게 시작되었다.

원효의 불교는 일심(一心)을 통한 화쟁사상(和諍思想)으로 흔히 요약된다. 일심은 일체의 망상이 사라진 마음자리로 왼쪽 한 발 옆은 화엄사상, 오른쪽 한 발 옆은 금강반야사상, 앞으로 한 발은 정토사상, 뒤로 한 발은 중관과 유식이 있었다. 즉, 6세기까지 모든 경론(經論) 해석의 정점에 있었던 것이다. 

의상 또한 화엄경에 달통하여 한국불교가 일찍이 최고의 경전을 접할 수 있는 절호의 인연을 만들어 준 최고의 논사였다. 이토록 희유(稀有)한 두 성현의 개시(開始)에도 불구하고, 지난 1,600여 년 동안 한국불교는 과연 무엇을 이루었는가에 대한 회의와 반성이 학술서 번역 출간을 기획하게 된 결정적 동기이다.

2. 한국불교에서 의상의 화엄사상 실종

의상에 의해 정립된 화엄 교학은 유심(唯心) 즉, 일심(一心)에 의해 펼쳐지는 법계연기(法界緣起)로 압축된다. 이는 붓다의 깨달음인 연기(緣起)를 모든 존재를 펼쳐지게 하는 본질인 이법계(理法界)와, 본질에 의해 펼쳐진 현상 세계인 사법계(事法界)를 무진연기(無盡緣起)로 설명한 세계관이다. 그리고 이 사상은 양자론같이 극미(極微)한 세계를 다루는 물리학이나 거시(巨視)적 우주를 다루는 천문학과도 잘 어울린다. 이는 화엄사상에서 다루는 대단히 심오한 논리이기도 하다.

다만 화엄경의 모체인 「십지품」에서 설하는 보살 실수행의 단계와 경지는 물론 수행의 구체적 방법이 간과되는 점은 매우 안타깝다. 「십지품」에서 설하는 보살지위의 수행은 십바라밀(十波羅蜜)로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방편·원·력·지 등 열 가지로, 「십지품」에서는 열 가지 모두에 ‘바라밀’을 붙여 사용함으로써 그 뜻을 명확히 하고 있다. 십바라밀은 보살의 십지(十地) 수행과 정확히 일치해, 초지보살은 “보시바라밀을 주 수행으로 삼되 다른 바라밀도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런 순차로 마지막 십지보살은 “지[智, 般若]바라밀을 주 수행으로 삼고 나머지 바라밀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라고 명쾌하게 설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불교는 왜 육바라밀만을 거론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나는 한국불교가 십바라밀을 수용할 수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십바라밀 중 앞의 육바라밀은 철저히 자리(自利) 수행의 단계이다.

여섯 번째 지혜바라밀은 자리의 지혜가 완성된 수행의 단계이고 보살 육지의 경지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어지는 보살 칠지에서 십지에 이르는 수행인 방편·원·력·지바라밀은 자리를 여의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보살 이타(利他) 수행의 본격에 해당된다.

육바라밀을 성취한 육지보살이라도 중생 구제를 위한 관세음보살 같은 방편, 보현보살 같은 원력, 어떤 장애와 마장도 능히 다스릴 수 있음은 물론 천제(闡提)까지도 구제할 수 있는 금강 같은 힘[力]을 갖추고, 마지막으로 궁극의 반야지(般若智)인 지바라밀을 얻게 된다는 것이  「십지품」에서 반복해서 강조하는 십바라밀의 본질이다.

십바라밀을 상기한다면 한국의 승가가 이타의 시작인 방편바라밀을 얼마나 이기적으로 악용해 왔는지 알 수 있다. 게다가 자리 수행에서마저도 오지보살의 선정바라밀에 집착해 육지보살의 지혜바라밀 수행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수행의 지침으로서 화엄경은 실종되어 버린 것이다.

3. 한국불교에서 원효의 통불교 실종

중국의 종파불교에 대해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통불교(通佛敎)라 지칭한 사람은 최남선(1890~1957)이다. 최남선은 1930년 「불교지」 제74호에 발표한 <조선불교(朝鮮佛敎)―그 동방문화사상(東方文化史上)에서의 지위(地位)>에서 한국 불교사상의 근원으로 원효를 지목하며 ‘통불교’라 했다.

원효를 따른다면 나는 최남선의 통불교를 원통불교(圓通佛敎)로 이해하는 편이 더 원효적이라고 생각한다. 최남선은 한국의 역사학자로 일본에 의해 가두어진 한국 사상 중 그나마 원효의 경지를 동경하며 찬탄하는 심정으로, 한국불교뿐만이 아니라 조국인 한국이 지향해야 할 미래 문화의 정신적 핵심 개념으로 ‘통불교’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나는 중국이 원효 이후에도 많은 불교사상을 수입 발전시켜 양과 질에서 종파불교를 형성할 충분한 여건을 조성했고, 실제 그들의 종파불교가 고려와 조선 시대의 불교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에도 주목한다. 중국 종파불교를 끊임없이 들여 온 한국불교가 최남선에 의해 원효에서 그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것을 통불교라 했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임에 틀림이 없다.

다만 아쉽게도 최남선은 조선과 고려를 거슬러 신라의 원효에 이르는 거의 1,300여 년간 통불교를 지탱하고 발전시킨 어떤 고승도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불교의 불행은 종파불교도, 원효의 통불교도 자기 것으로 소화해 낼 능력이 없었다는 데 있다.

현재 한국불교는 승가를 이끌 걸출한 수행자를 배출해 내지 못하고 있다. 승려들 중 화엄·반야·법화사상의 차이는 고사하고, 붓다의 삶과 궁극의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이는 승가가 선수행자는 문자에 의지하면 안 된다는 그릇된 전통에 집착한 나머지, 경전까지도 가까이하지 못하도록 방임했지만 실제로는 선수행을 통한 ‘경지’에 도달한 수행자마저 배출하지 못한 진퇴양난의 결과이다.

본 우수학술서 번역 불사는 한국불교의 현재를 직시하고, 자기반성과 반전(反轉)의 인과 연을 심어놓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원효와 의상 이후 한국불교의 정상에는 고려 중기의 보조(1158∼1210)가 있었다. 보조는 선교일치(禪敎一致)를 통한 정혜결사(定慧結社)로 불교 중흥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대혜종고(1089~1163)의 간화선을 한국불교의 대표적 선수행으로 정착시켰다. 

원효에서 보조에 이르기까지는 한국불교의 정체성이 통불교였다고 말할 수 있다. 흔히 근대 보조의 선풍을 되살려 간화선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였다는 수행자로 경허(1849~1912)를 꼽는다. 경허가 간화선의 맥을 이은 것은 사실이나 그것으로 경허의 일탈적 언행의 허물이 덮어지는 것은 아니다. 경허의 막행막식에 원효의 무애나 대자유인만이 누릴 수 있는 경지에서나 가능하다는 식의 접근은 대단히 우려스럽다. 경허는 수행의 마장(魔障)을 조복시키지 못했던 것이고 극기(克己)에 실패했을 뿐이다. 

현대에 접어들어 성철(1912∼1993)은 간화선사로서 치열함과 혜능(638~713)과 육조단경 논리에 충실한 돈·점의 논쟁을 주도하며 불교의 위상을 높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육조단경은 혜능의 추종자들이 후대에 만들었고, 그 내용도 선의 교과서 격으로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연구 결과가 거의 30년 전에 발표되었다.[본 세존학술번역총서 중 『북종과 초기 선불교의 형성』이 대표적이다.]

성철의 간화선에는 이런 이론의 문제보다 더 심각한 수행의 자기모순이 있다. 화두 참구 시 반드시 경계해야 할 병통(病痛)에 대해 보조(1158~1210)에서 서산(1520~1604)에 이르기까지, 간화선사들이 실참하며 거론한 간화십종병(看話十種病)의 지적과 성철이 육조단경을 중심으로 펼치는 주장은 상당 부분 배치된다. 

또한, 성철의 간화선 수행은 밀교의 주 수행인 진언수행을 우선 또는 병행하게 하는 것이 특이하다. 밀교는 법신불 격인 대일여래(大日如來)를 주불로 세워 힌두교의 여러 신들을 정교한 구성으로 회화(繪畵)화하고, 그 수행은 주문(呪文) 즉, 진언과 다라니를 염송하여 즉신성불(卽身成佛)을 성취한다는 7세기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이다. 하지만 밀교는 불교가 사실상 힌두교에 흡수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밀교의 수행 핵심인 진언수행을 간화선사인 성철이 강조했던 근거는, 중국과 한국의 일부 선수행자가 능엄경이 선정과 마장의 경계를 밝혀 놓았다는 이유를 들어 소의(所依)로 삼은 데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능엄경은 중국에서 편찬한 위경(僞經)이고, 간화선은 오직 ‘화두’에 생사를 거는 것이 수행의 전통임을 되새긴다면 성철이 밀교 경전인 능엄경의 능엄신주를 간화선에 접목한 것은 이해하기 난감하다.

이렇듯 근·현대를 대표하는 경허, 성철의 불교는 최남선이 탐구해 낸 원효와 의상을 원류로 하는 통불교도 정통 간화선도 아니다. 여기에 승가의 수행력에 대한 불신으로 남방불교의 수행법인 위빠사나가 빠르게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한국불교의 정체성이 통불교라 주장하기에는 무엇인가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한 것이다.

물론 한국불교가 통불교라는 개념에 갇힐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추구하는 목표는 분명히 해야 한다. 그 분명한 목표가 당위성을 얻기 위한 작업에 본 학술서들이 일조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4. 한국불교를 위한 제언  

나는 20여 년 전부터 시작된 일본의 소위 ‘비판불교’적 시각을 한국불교도 적극 논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승가 곳곳에서 한국불교의 고사(枯死)를 인정하고 있으니, 역설적으로 미래 불교의 새싹을 공개적으로 논할 수 있는 여건이 성숙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주요 경과 논서들을 보며 오히려 많은 의문이 들었다. 예를 들면 붓다의 깨달음은 연기임에도 다섯 비구에게 설한 것은 사성제라 하는데, 붓다는 사성제와 연기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셨는지 명확하지 않다.

화엄의 유심(唯心)과 세친의 유식(唯識)이 공존할 수 있다면 심과 식의 차이는 없다는 것인가? 

화두를 타파하면 연기와 공의 진리에 온전히 계합(契合)되는 경지인가? 

간화선 자체를 불교 수행의 하나로 인정하며 생기는 수많은 모순들을, 간화선은 중국불교만의 독특한 수행법이라고 떨쳐 버리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가? 

붓다는 은인과 같았던 빔비사라 왕과 위제희 왕비를 죽이고, 곧 자신의 부모를 죽이고 왕권을 차지한 아사세 왕을 어떤 감정으로 대했을까?

이런 근원적 의문들의 해법에 전전긍긍하였다. 쉽게 말해 전설적 해석에 너무 관용적이고, 오래되고 추종자가 많다는 이유로 불교 사상이나 수행의 당위성을 인정해 주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 내 불교관의 핵심이다.

일본 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비판불교는 바로 이런 내 의문들과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신기할 정도로 동질성이 있다. 그리고 비판불교는 2,000년 이상 군살이 붙은 불교의 맨살을 되살리자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복과 호국의 정당성을 신앙적으로 이용한 측면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불교로서는, 이런 비판불교 정신으로 미래 불교의 판을 짜는 것을 승가와 학계가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고 제안한다. 

5. 맺는말

이 시대는 초고속의 기술개발과 응용에 폭발적 가속이 붙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간이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전혀 다른 세상으로 질주하고 있다. 혁명의 중심에는 인공지능(AI)이라는, 물질만으로 조립된 인간보다 유능한 기계로 인간의 생각까지 추적하고 추월한다는 목표가 있다. 이 변화는 결국 역사 이래 가장 근원적 난제인 ‘마음이라는 정체성의 본질이 정신에 있는가, 물질에도 있는가?’라는 문제에 가장 실감 나게 봉착하게 될 것이다. 불교가 지금과 같이 ‘마음’이라는 한 단어만을 모든 것의 만능으로 삼고, 마음으로 ‘인식하고 통찰하는 연기적 사고’를 적응시키지 못한다면 유일신의 종교보다 더 빠르게 사라질 것이다.

미래에 그런 불교를 구현하려면 붓다의 가르침의 궁극이 무엇인가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단서와 근거’의 씨앗을 뿌려 놓아야 한다. 말하자면 최소 1,000년은 넘은 대장경의 논장(論藏)보다 실용적이며 미래 적응 가능한, 21세기의 논장을 만들자는 것이 내 바람이다.

본 총서에 꼭 넣고 싶었던 폴 윌리엄스 편집, 『대승불교 논문집』 5권을 포기하는 것이 아쉽지만, 나는 번역서 10권을 내는 것에서 작업을 그칠 수밖에 없다. 원력 있는 불자나 재가 단체가 이 불사를 이어주길 바란다.

10권 출간 작업을 진행하며, 이 학술서 번역 불사는 재원 확보의 어려움은 물론 번역 원고 교정까지 각 공정이 정말 전문적이고, 특별한 정성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렇기에 의례적인 인사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감사 말씀을 드리며 간행사를 마친다.

이 학술적인 번역서들이 출판될 수 있도록 큰 원력을 내 주신 박찬호 거사와 학계의 열악한 연구 여건에도 불구하고 번역을 흔쾌히 수락해 주신 교수님들과 편집·교정을 해 주신 분들, 특히 민족사 윤창화 사장님의 안목과 열정에 깊이 감사드린다. 또한 십시일반으로 후원해 주신 불자들께도 감사드린다.

                                                           2018년 정월 초하루 무설설당에서 

세존학술연구원장 성 법 합장